산산이 부서진 남자

‘산산이 부서진 남자’는 마이클 로보텀이 쓴 장편 소설인데 책 소개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전화 한 통만으로 여자들을 발가벗기고, 배에 ‘걸레’라는 말을 새기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수 있는 간악하고도 능란한 살인마다.

전화 한 통만으로… 꽤 놀랍고 흥미로운 얘기다. 어떻게 전화 한 통만으로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스티븐 킹에게서 “희생자들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만큼 설득력 있는 악마”라는 찬사를 얻어낸 이 범인에게는 모델이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전화 통화만으로 수백 명의 여자들을 협박하고 조종했던 ‘피터 도넬리’라는 인물이다. 이 사실을 알고 책을 읽는다면 소설 속 범인이 저지르는 일들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데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제 모델도 있단다. 과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시작부터 정말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

주인공인 조 올로클린은 임상 심리학자이다.  파킨슨 병으로 육체가 점점 망가져 가고 있으며,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신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우울함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심리학자인 까닭에 사건과 점점 얽히며 프로파일링을 하고 범인을 잡으려 노력하지만 이야기 내내 볼 수 있는 모습은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뛰어난 프로파일러가 아니다. 그저 실수 많고 어찌할 지 몰라 허둥되는 보통 사람일 뿐. 어찌보면 더 설득력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의 범인은 군인이며 그 활동이 국가 기밀에 속할 정도로 은밀한 일을 수행했다. 정보를 캐내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치 않는 비인도적 행위를 수 없이 반복했으며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의 정신이 ‘산산이 부서진 남자’이다. 그리고 조 올로클린은 뛰어난 임상 심리학자였으나 병에 잠식되어 서서히 부서져 가는, 아니 이미 ‘부서진 남자’이다.

전반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읽긴 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범인은 중간에 이미 드러나고 범인이 여자를 전화 한 통만으로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이유도 쉽게 드러난다. 알고나면 뭐랄까…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음직한 얘기라 이해는 가지만 다소 식상한 소재에 김 빠진 사이다 같달까. 핵심이 빨리 드러난 만큼 이후 전개가 좀 더 흥미진진했으면 했지만 너무 빤하다. 게다가 마지막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사건 역시…

“조, 나는 이제 당신을 잘 모르겠어. 당신은 슬픈 사람이 돼버렸어. 너무, 너무 슬픈 사람이야. 그 슬픔을 먹구름처럼 드리우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시켜.”

“나는 슬프지 않아.”

“슬픈 거 맞잖아. 병 때문에, 나 때문에, 우리 애들 때문에,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잖아. 당신은 자신이 예전 그대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당신은 변했어. 이젠 더 이상 타인을 믿지도 않고, 마음을 주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아. 친구도 없잖아.”

줄리안이 쏘아붙인다. “조, 정신분석은 당신한테나 해. 당신이야말로 진심으로 웃어본 게 언제야? 배가 아프고 눈물이 날 만큼 웃어본 게 대체 언제나고.”

참고로 이전 작품인 ‘용의자’는 이 이야기보다 앞선 시간을 다루므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 사이 관계와 배경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Notes:
1. 예측하기도 쉽다.
예측하기도 쉽다.